할머니 삶의 끝자락을 함께 한 ‘병원생활’

인천진산고등학교

1학년 연 지 혜

  2005년 초, 시골에서 지내고 계시던 외할머니께서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모님께서는 전라북도의 한 병원에 입원하신 할머니를 인천병원으로 모셔왔다. 저녁에 돌봐 드려야 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 당시 엄마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저녁에는 할머니를 돌봐드리지 못했고 오빠도 강원도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를 돌봐드릴 수는 없었다. 결국 할머니를 돌봐드릴 수 있는 것은 중학교 2학년이었던 바로 나였다. 할머니가 인천병원에 입원하신 그 날부터 나도 반년동안 ‘병원생활’을 함께 하게 되었다.

  우리 할머니의 병명은 ‘뇌종양’이었다. 암 환자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에 솔직히 말해서 덜컥 겁이 먼저 났다. 그때 나는 겨우 만14세였는데 8년 만에 뵙게 되어 사실 할머니에 대해 뚜렷한 기억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뇌종양’이라는 병은 처음 알게 되었지만, ‘무서운’ 병이라는 생각은 있었기 때문에 병간호가 사실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난 다만 잔심부름이나 하면 될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처음 병원에 오셔서 증세가 그리 심각하지 않으셨던 할머니를 간호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저녁마다 할머니께서는 화장실을 가기위해 혼자서 병실을 나가셨다. 당신의 병실 침대 옆 조그만 간병인 침대에서 자고 있는 손녀딸의 잠을 깨우기 싫으셨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거동이 불편하지도 않으셨고 별다른 탈 없이 화장실만 갔다가 돌아오셔서 다시 주무시는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병실이 답답하시다며 복도에 걸어 다니시다가 병실로 돌아오시는 데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땐 나도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어서 ‘병원생활’이 그렇게 힘들지 않아 병원에서 지낼 만 했었다.

  그렇게 잘 지내는 듯 했지만 할머니의 종양은 커져만 갔고 그만큼 증세도 심각해져 갔다. 할머니는 혼자서 걷기가 불편해지셨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자고 있는데 간호사가 날 흔들어 깨웠다. 할머니가 혼자 화장실에 가시다가 넘어졌으니까 앞으로는 절대로 혼자 보내지 말라고 간호사가 말했다. 그때부터 난 밤에 할머니를 보느라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저녁에 조금이라도 자볼까 하고 누워 잠이 들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혼자서 밖으로 나가셨다. 할머니께서 또 넘어지면서 간호사가 화를 내듯 다시 한 번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말했다.

  더 이상 그렇게는 지낼 수 없겠다고 판단했던 내가 한 가지 대책을 마련했다. 바로 할머니의 발과 내 손을 하나의 끈으로 묶어 연결하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일어나려고 움직이시면 내가 바로 깰 수 있게 말이다. 처음으로 그 방법을 실행하던 날, 할머니의 발을 끈으로 묶고 내 손목을 그 끈으로 다시 연결하는 나의 행동을 보고 우리 할머니는 말 그대로 박장대소 하셨다. 손녀딸이 하는 짓이 귀여우셨는지, 아니면 어이가 없으셨는지 깔깔깔 소리내며 웃으셨다. 병환에 시달리시며 좀처럼 볼 수 없던 할머니의 웃음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때 ‘우리 할머니 웃는 모습이 참 고우시다’, ‘할머니랑 같이 있는 동안 내가 할머니를 많이 웃게 해드려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게 손녀딸로서 할머니께 해드릴 수 있는 효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할머니와 끈으로 연결하며 지낸 시기도 하루 이틀 지나갔다.

  이제 할머니의 병환은 침대 생활만 하시는 상황까지 악화되었다. 잠깐 잠깐 휠체어를 타고 병실 밖으로 바람을 쐬러 나가긴 했지만 하루의 대부분은 침대에서 보내셨다. 이제 밥도 혼자 드실 수가 없어서 내가 손수 일일이 다 떠먹여 드려야했다. 정말 그땐 귀찮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할머니 진지 드리는 것부터 목욕시켜 드리는 것, 휠체어 태워 화장실 다녀오는 것 등 정말 이제 상상도 하지 못하게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땐 내가 방학기간이었다. 엄마는 일을 가셔야 했고 거의 하루 종일 그것도 매일 매일 병원에 붙어 있었다. 친구들은 방학이라고 영화도 보고 놀이동산에도 가자고 했지만 친구들과 함께 놀 수가 없었다. 놀러 갈 계획을 잡아도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다. 따분하고 지루하고 내 생활이 정말 지치고 힘들었다. 그래도 할머니와 엄마 앞에서 힘든 내색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엄마랑 할머니는 나보다 몇 배는 더 힘드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지친 방학도 거의 끝나갈 무렵에 할머니는 아예 움직이지도 못하시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일반 병실에 계속 계시기에는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결국엔 준중환자실로 옮기게 되었다. 물론 나도 따라서 옮기게 되었다. 나는 그 곳에서 먹고 자는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화장실도 갈 수 없어 기저귀를 차게 되신 우리 할머니 기저귀도 갈아드리면서 말이다. 여지저기서 병문안을 오시는 손님들께서 효녀라고 많이 칭찬해 주셨다. 그런데 그때 할머니 기저귀 갈아드리는 것이 익숙해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효녀? 그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은 무척 좋았다. 하지만 효녀라는 말을 내가 들을 자격이 있을까라는 의문도 생겼다. 난 우리 엄마를 도우려고 할머니를 돌봐드린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병환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들어가셨다. 그 날 나도 모르게 많이 울었다. 중환자실은 면회시간 이외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곁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이 늘 불안했다. 간호사들이 어련히 잘 돌봐주실까마는 혹시나 할머니께 잘못하지는 않을까 불안했다. 병원에서 잠을 자지 않고 집에 와서 자는 것이 편안할 것도 같은데 이상하게 잠도 오지 않았다. 그때 정말 ‘내가 할머니랑 정이 많이 들었구나, 역시 핏줄은 다르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할머니가 마지막을 보내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할머니 장례식이 끝나고 화장까지 해서 뿌려드리고 집에 돌아왔다. 장례식이 있던 날, 그날은 참 짧은 하루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것이라고 마음의 준비들을 하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정말 그날 그렇게 빨리 돌아가시게 될 것이라고는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때서야 내 오랜 ‘병원생활’이 끝을 맺었다.

  돌이켜 보면 많은 생각이 난다. 나의 병원생활 동안 여러 사람들에게서 효녀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어깨도 으쓱해지고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내게는 그 의미가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효라는 것, 그렇게 큰일은 아닌 것 같다. 별거 있을까? 나처럼 특별한 사연이 아니어도 엄마, 아빠께 짜증 부리지 않는 것, 집 밖에서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것, 그런 것들도 효라면 효일 것이다. 부모님께 무언가를 해드리는 것만이 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바른 생각을 갖고 올곧게 살아가는 것, 그래서 부모님이 즐거워하신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효라는 것은 내 자신을 올바른 길로 갈 수 있게 잡아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할머니와 함께 한 반년간의 병원생활은 곧 내 삶의 길잡이였다.